성공스토리[서울런4050] New-UP(業)의 발견 – 공간을 품은 꿈의 씨앗, 로컬 가치 개발자 도주희 전통 자수공예가와 이용우 <내곁에서재>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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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 가치 개발자: 
지역의 특성과 환경을 활용하여 유무형의 자원을 개발하고 다양한 기회로 연결하여 지역을 삶이 깃드는 장소로 만드는 사람




7호선 공릉역에 내려 골목길을 따라 걸어가면 은은한 달빛을 띤 건물, 소채담을 만나게 됩니다. 소채담의 또 다른 이름은 공간보윰. ‘보윰하다’는 ‘빛이 조금 보얗다’는 순우리말 표현이라고 합니다. 전통 자수 공방(1층), 공유 서재(2층), 화실(3층)과 공유 주방(4층)이 모여있는 공간보윰은 작은 예술촌 같습니다. 손수 꾸민 예술촌에 ‘자기만의 방’을 마련한 부부. 그 안에서 각자의 업(業)을 꾸리는 도주희 님과 이용우 님을 만났습니다.




인생그래프, 직업에 대한 정의와 가치관을 바꾸다.


"회사는 언젠가는 그만둬야 할, 일종의 ‘정해진 미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걸 회피해요. 그게 더 편하니까. ‘내가 왜 내려놔.’ 하죠. 저는 내려놓고 말고 할 것도 없이 정해진 거라 생각했어요. 차장 올라갈 때쯤 다음에 무엇을 할지 설계하기  시작했는데 그 배경에는 독서가 있었어요. 책을 통해 여러 가지 경험을 하면서 제 안에 주제가 생겼죠. 그러면서 직업에 대한 정의와 가치관이 바뀌었고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하는 직업은 월급 받는 직장인이지만, 저는 진짜 업(業)이란 무엇일까? 생각했어요"


이용우님: 

대기업에서 무역 관련 업무를 했어요. 21년 직장생활 중 7년 정도는 해외주재원 생활을 했고, 2012년에 처음 팀장이 됐지요. ‘인생그래프’라고 아세요? 연령대에 따라 주요 항목별 만족도를 그리는 건데 회사에서 그려보라 해서 알게 됐어요. 그런데 ‘잠깐만, 이 만족도는 뭐지?’라는 의문이 남더라고요. 직장인에게 만족도는 연봉, 권력, 명예, 승진, 이런 건데 행복이나 만족감이란건 굉장히 주관적 지표잖아요. 그러다 어느 날 ‘자아정체감’을 척도로 삼으면 그래프가 어떻게 나올지 궁금해졌고 전혀 다른 그래프가 되겠다는 예측은 했죠. 그렇게 나는 누구인지,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고민을 시작했어요.


옛날 메모를 찾아보니 처음 서재에 대해 마음을 먹은 시기가 2017년이었어요. 정확히 ‘2017년 8월 4일’. 당시 선릉역 <최인아 책방>이 오픈하고 얼마 지났을 즘일 거예요. 이런 건 부사장 타이틀이나 배경이 없어도 할 수 있겠다, 내가 좋아하는게 책이니 괜찮겠다, 이후 임원 후보에 들어 승진을 기대하던 차에 2019년 조직이 개편 되면서 부문이 없어졌어요. 제가 부문 사업전략 팀장이었는데 말이에요. 계획을 실행할 때구나 했어요. 해외 지사를 정리해야 하는데 (사실상 해외 조직 인력 구조조정) 그 일을 후배들한테 맡길 수는 없었어요. 그래서 여기까지 내가 하고 일이 마무리되면 나간다고 선언했죠.


당시 회사에 전직지원 프로그램이 있었어요. 저는 업무상 회사 제도를 잘 알고 있었거든요. 대부분은 모르고 있었나 봐요. 담당자를 찾아 ‘이런 게 있던데 어떻게 하면 되냐?’ 물어보니 구색 맞추기로 만들었고 아무도 신청하지 않아 잘 모른다고 하더군요. 그래도 규정으로 책정된 예산을 받아 1년여 디자인 학원을 다녔어요. 포토샵 같은 프로그램을 하나하나씩 다 배웠죠.




다른 사람들이 안간 길은 이유가 있다고 여겨 걱정할 법한데 도주희 님은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이라면 성공하겠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합니다. 남편이 하는 일을 구체적으로 알지 못해도 이 사람이면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 남편이 하는 일에 대한 믿음은 항상 그런 방식으로 확인됐다고 합니다. 무언가를 결정할 때 항상 같이 의논하고 대화를 많이 한다는 두 분. 역시, 관계에서 가장 빛나고 귀한 것은 서로에 대한 신뢰가 아닐까요.


도주희 님은 2022년 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 전통자수부문에서 입상했습니다. 현재 공간보윰에서 전통 자수공방 바나실을 운영하고 있는 작가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도주희님:

건축을 전공했고 정부 출연 연구기관에서 일했는데 즐거운 마음이 드는 일이 아니어서 일에 대한 동력이 크지 않았어요. 아이 낳고는 회사를 관두고 남편을 따라 해외로 가게 됐죠. 하지만 내 일을 찾으려는 마음은 항상 있었어요. 전통 자수를 하기 전까지 제 물음은 하나였어요. 나는 무얼 해야 되나? 그래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배웠고요.


남편을 따라 간 중국에서는 2년간 공부해 중국어 관광 통역사 자격증을 땄고, 한국에 돌아와서는 노원 여성인력센터에서 청소년 진로 설계사를 공부했어요. 현장 교육도 나가고 재미도 있었죠. 당시 아이들에게 자주 해주던 말이 있어요. ‘하고 싶은 게 있으면 그냥 배워봐. 무조건 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그만두고, 다른 관심사가 생기면 또 해봐. 시행착오를 겪어도 괜찮아.’ 어느 날 문득 그 질문이 저한테 오더라고요. 나는 내 진로를 찾기 위해 어떤 시행착오를 겪어 봤지? 취미조차도 글로 배우고 머리로만 생각하던 저였는데 프랑스자수를 배울 용기를 냈죠.


처음엔 너무 좋아서 잠자는 시간을 빼고는 자수를 했어요. 그러다 우연히 <박을복 자수 박물관>을 들어갔는데…… 아! 심장이 마구 뛰고. 지금 다시 생각해도 울컥해요. 그날 집으로 돌아와서 새벽까지 잠을 못 잤어요. 실크 위에 섬세하게 놓아진 자수. 나도 이걸 해야겠다!!


그 때가 2018년이에요. 배우는데 우여곡절은 많았어요. 여러 선생님을 찾아 다니고, 연구도 많이 하고. 처음 자수를 할 때는 실을 어디서 사는지도 알 수 없었죠. 그리고 코로나가 와서, 교육기관들이 전부 운영 중단 됐어요. 실질적으로 배운 기간은 채 2년이 안 될 거예요.


그런데 코로나 때 배우러 가지를 못하니 자료를 많이 찾아봤어요. 중국어를 할 수 있어 관련 자료를 찾는데 도움이 많이 됐죠. 그리고 국내는 양잠을 하는 곳이 점점 사라져 실크 사(絲)를 구할 수 없는데 중국은 아직도 자수 하는 곳이 많고 양잠업도 하고 있어요. 그래서 중국에서 실을 구하게 되고, 지금은 전통 색을 내기 위해 직접 실 염색과 판매도 하고 있어요. 내가 중국어를 배운 게 이것 때문이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평생 할 수 있는,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찾게 된 거예요.


그러자 ‘공간’이 필요해졌죠.




공간 포트폴리오 – ‘나’와 ‘당신’과 ‘마을’을 담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코끝을 스치는 향기에서, … 한 모금 커피에서, 공간을 채우는 아름다운 음악 속에서, … 시각적 즐거움에서, … 내 몸을 감싸 안는 쿠션의 감촉에서, 오감이 즐거워 기억에 오래 남을 수 있는 공간이 되길, 그 즐거움으로 지친 일상에 촉촉한 단비를 내려 다시 세상 한가운데로 뚜벅뚜벅 걸어갈 수 있는 힘이 샘솟는 곳이 되길"

  • 「내곁에서재」 인스타그램 게시글 中


이용우님:

자수를 좋아하는 아내를 보면서 ‘공방 만들어 줄게’ 했는데 이게 소채담으로 실현이 됐네요.

(웃음) 2018년에 여기 구옥(舊屋)을 샀어요. 이 동네에 살고, 우리가 쓸 공간이고 자산 가치 측면에서도 손실은 없을 테니 사도 되겠다. 그런데 2019년도 말에 어떤 이정표들 같은 일들이 발생한 거예요. 원래는 2년 정도 더 지나서 건축을 할 계획이었지만 2017년부터 어느 정도 밑그림은 있었고, 세입자 분들은 나간다 하고, 코로나까지 발생하자 차라리 지금 실행하자, 하고 건물을 올렸어요. 이때 이야기들은 제 블로그에 있어요.


주변에선 원룸을 지으라고 하는데, 수익을 위해 방을 많이 내는 그런 구조가 싫었어요. 건물이 스트레스를 받겠다 싶었죠. 내가 짓고 싶은 건물은 우리가 계속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사회 공공의 부분을 고려하는 공간이었어요.


도주희님:

1층은 제 공방으로 쓰는데 서재는 남편이 원하는 공간이고 그것들을 어떻게 채울까 건물을 짓는 1년 동안 고민했어요. 책방도 아니고 카페도 아닌, 이런 곳이 없을뿐더러 어떻게 비용을 책정해야 되나? 동네에서 가볍게 와서 잠깐 책 보거나 쉬다 갈 수 있으려면 커피 한 잔 가격이라야 한다. 그런데 아무도 안 와요. 왜 이렇게 아무도 안 오지? 아시는 분들이 일주일에 한 번씩만 와도 꽤 와야 되는데? 전혀 오지 않으니 뭐가 잘못된 걸까? (웃음)


이용우님:

일단은 여기를 알리려고 인스타그램을 시작했어요. 브랜드 이미지와 통일감을 위해 서재는 제가, 옥탑식탁과 자수공방은 아내가 담당했어요. 서재의 고객층과 목적을 설계해 몇 가지 규칙을 만들어 꾸준히 운영하자 팔로우가 늘기 시작했어요.


<내곁에서재>는 현재 1.8만명의 팔로워와 1100여개의 책 소개 피드로 채워져 있습니다.

무얼 하겠다는 생각보단 책을 좋아해 서재를 꾸미긴 했는데, 어느 순간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서점은 아니다. 책방이지만 무인으로 공간을 빌려준다. 당장 수익은 안되겠지만 길게 가고 알려지면 멀리서도 찾아올 거다.’ 그 당시 막연한 생각으로 메모해둔 것들이 있는데 진짜 2년이 지나니 이렇게 찾아오시네요. 사실 기다리면 된다고 계속해서 말했지만 고민도 많았거든요. 이걸로 정말 먹고 살 수 있는 건가? 그런데 지금은 책방과는 다른 방법으로, 어떻게 보면 사람들과 나누는 ‘공간’이 돈을 벌어 주는 구조가 됐죠.




마을 안에 뿌려진 꿈의 씨앗: 연결되고 확장되는 힘




서울은 25개 구, 467개의 법정동으로 이루어진 거대도시입니다. 아파트 중심의 주거형태는 ‘마을’을 추억 속 단어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정책적인 지원이 있더라도 마을 공동체를 꾸리는 일의 어려움이 얼마나 큰지 알기에 공릉 마을공동체가 더 특별해 보였습니다.




이용우님:

많은 사람들이 공릉동이 어디 있는지 잘 몰라요. 서울 동북의 외곽으로 인식되어 멀다고 느끼는 분들도 많죠. 저는 길음 뉴타운에서도 살았는데 답답했어요. 여기는 서울이지만 서울 같지 않고 옛날에 생각하던 동네 느낌이라 좋아요. 여기 공동체에서 하는 카페가 있는데 지자체에서 위탁 받아 주민들이 아르바이트도 하고 자원봉사도 하고. 지자체 지원을 받지 않고 마을이 자체적으로 기금을 마련하는 마을 축제와 아이들 축제도 있어요. 모두 자발적으로 생성되고 운영되는 거죠. 마을 회의도 있고요.


아무튼 동네 분위기가 있으니 로컬에서 어떤 역할이 있지 않을까, 어렴풋이 인식하고 있었는데 공간을 꾸미니 그분들이 찾아오기 시작했어요. 제가 공공성에 대해서 얘기를 했잖아요. 아내가 처음 자수를 시작한 곳도 공릉동의 동네 배움터 였는데 어떻게 보면 마을이 배출한 작가인 셈이거든요. 그곳과 다시 연결이 되고 협동조합 이사장님과 계속 만나면서 저도 동네에서 역할을 찾게 됐어요. 공릉동에서 로컬 비즈니스를 하는 청년 기업의 자문역으로 함께 일하고 있어요.


어느 순간부터 ‘서재님’이 저의 직업이자 아이덴티티가 됐어요. <내곁에서재>가 많이 알려지고 가끔씩 오프라인 모임을 해요. 매번 새로 오는 분들, 처음 뵙는 분들이 있고 이 공간을 통해 만나는 분들의 연령층도 다양해졌어요. 회사생활 할 때와 비교하면 엄청나게 다이나믹 하죠. 나이와 연대를 초월한 새로운 관계들을 형성할 수 있어 좋아요. 참 잘한 것 같아요. 공간이 주는 힘은 여기 오시는 손님들도 느끼지만 운영하는 사람들도 느끼거든요.


도주희님:

저에게 자수는 꿈의 씨앗 하나였어요. 내가 뭘 하면 좋을까? 4-50년을, 나는 창작하고 만들어 내는 일은 못하는 사람이라고 단정지었어요. 이렇게 잘 할 수 있는데 말이죠. 마을을 통해 자수를 시작하고, 정말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하면서 그런 고민들이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모습을 직접 보니 꿈 하나가 이렇게 많은 걸 만들어내는구나 알게 되고 놀라게 돼요.


내가 원하는걸 찾고 남편이 공방을 만들어 준다고 말했던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의 과정을 모두 저의 꿈이 이뤄낸거죠. 이 공간을 꾸미고, 인터뷰도 하고, 내 수업을 열고. 다음주에 다른 구(區) 도서관에서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원데이 클래스도 진행해요. 이렇게 꿈이 움직이면서 확산되는 걸 경험하고는 선생님들이 버릇처럼 말씀하시던 ‘꿈을 가져라’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또 얼마나 중요한 말인지 새삼 깨닫게 돼요.





Q. 서재에서 하는 인터뷰인 만큼 4050 중·장년층이 보기에 좋은 책이 있다면 추천해주세요.


책 추천은 안하는데. (웃음) 책은 취향도 다르고 추천하기가 힘든 분야거든요. (고민)

4050이 되면 자기 생각이 강해지잖아요. 본인이 했던 경험들이 맞다고 생각하죠. 그 경험을 통해서 어떤 성과를 얻고 안정적인 삶을 위한 기반도 마련했으니까요. 그런데 거기서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 줄어드는 것 같아요.

최근에 본 과학책들 중에 타인에 대한 공감을 새롭게 인식시키는 부분이 있어서 말씀드리면, 김초엽 작가의 SF소설 『파견자들』은 타인과 내가 느끼는 세계(세계관)가 다른걸 동물과 비교해요. 감지 세계에 대한 또다른 이야기로 에드 용의 『이토록 굉장한 세계』가 있고, 룰루밀러의 『물고기는 없다』에 영향을 준 ‘캐럴 계숙 윤’의 책, 『자연에 이름 붙이기』도 식물들이 느끼는 세계에 대한 내용이예요. 타인에 대한 공감을 떠나 동식물로 관심을 넓히는데 일종의 은유가 있죠. 그런 것들을 보면 내 마음 같지 않은 자식을 봐도 ‘그들이 보는 세계가 다르구나’ 이해되고, 내 맘 같지 않은 직장 상사를 봐도 ‘나와 다르니까’ 하고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어요. (웃음)




이용우 님과 도주희 님은 공간을 인원과 시간의 곱으로 따지는 사업가가 아니라 찾아온 인연과 경험을 더하고 나눠 성장시키는 농부 같았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고민하고, 꿈을 찾아 걸어가는 모든 길이 삶의 이정표를 세우는 과정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어쩌면 ‘나’와 ‘꿈’은 동의어가 아닐까요. ‘나의 꿈’을 따라가며 자신만의 이정표를 세우는 분들이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서로의 손을 꼭 잡고 골목까지 배웅해주시는 두 분을 보면서, ‘공간보윰’에서 느꼈던 따뜻하고 편안한 기분이 시작된 곳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이용우 님은 공간이 사람을 선택하는 것 같다고 말했지만 저는 역시, 공간의 색을 만드는 건 사람이라고 믿게 됩니다. 





인터뷰 및 정리 : 화담,하다 권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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