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가:
기존 산업 내에서 새로운 방식을 통해 문제를 발견하고 남다른 해결책으로 사업을 시작하려는 사람
“휴일 아침 슬리퍼에 간편복 차림으로, 아들 손 잡고 와서 빵 하나 사 갈 수 있는 동네 빵집이 되는 게 제 꿈이에요. 전국에 알려진 유명한 빵집이 있는가 하면, 지역 곳곳에 문을 열고 서로 다른 맛을 보여주는 동네 빵집도 있죠. 그 집을 찾아야만 먹을 수 있는 빵을 만드는 동네 빵집이 많이 생기면 좋겠어요.”
유기농 토종 밀과 우리 밀을 이용해 만드는 유럽식 건강빵. 담백한 식사 빵 맛처럼 꾸밈없는 미소를 짓는 6년 차 프로 제빵사 이인교 님을 양천구의 동네 빵집 아쥬드블레(âge du blé, 밀의 시대)에서 만났습니다. 회사원으로 근무한 21년의 세월과 3년의 준비기간, 제빵사로의 6년까지 묵묵히 걸어온 그 길을 인터뷰로 따라가 보았습니다.
“보험회사에서 일했는데 회사에서 명예퇴직 프로그램을 진행했어요. 그냥 손들고 나오는 게 아니라 보통은 대상자들의 범위가 나와요. 그때 제 입사년도가 포함됐다고 들었어요. 가능하면 그 입사년도까지는 나가라는 뜻이죠. 처음엔 나와는 관계없다 여겼지만 회사가 우리를 필요로 하지 않는데, 내가 왜 여기 있어야지? 여기서 열심히 일했던 그 힘이면 나가서 무엇이든 할 수 있지 않을까? 다른 일을 해보자. 시작은 그런 마음이었어요.
제가 취미로 홈베이킹을 했어요. 집에 있는 작은 오븐으로 아이들에게 쿠키며 모닝빵 같은 간식을 만들어 주곤 했는데, 조물딱 조물딱 만드는 게 재밌더라고요. 아이들이 맛있다고 해주는 것도 좋았고요. 자주는 못 해도 휴일이면 무언가 만들곤 했어요.
회사에 다니면서 누구나 한번은 노후 준비를 고민해 보잖아요. 월급생활자 중에 노후에 놀고먹을 수 있을 만큼의 돈을 준비하고 나오는 사람은 거의 없죠. 일은 해야 할 테고. 어떤 일을 할까? 정년퇴직하고 빵으로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노후를 보내고 싶다. 그런 막연한 생각을 하고 있다가 더 나이 들기 전에 미리 시작해도 좋겠다는 마음으로 회사를 나왔어요.
지금 보니 정말 잘한 것 같아요. 제빵이 생각보다 훨씬 힘든 일이에요. 학원에 다니는 동안은 사람들이 착각하죠. 잠깐 배우는 건 어렵지 않거든요. 본업으로 일을 해보면 이게 진짜구나 느끼실 거예요. 빵집에서 일하면 젊은 사람들도 힘들어서 많이 들어왔다 나가요. 그래서 시간이 더 지나고 시작했다면, 가령 정년퇴직 후에 시작했다면 이 일을 못 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하지만 너무 일렀어도 시작하기 어려웠을 거예요. 시간과 돈을 투자해야 하는 일이라서요. 제가 그만둘 때 큰아이가 대학교에 막 입학했고 둘째는 고등학생이 되는 시기였는데 2015년 회사를 나와 2018년 여기에 가게를 오픈하기까지 3년간 제대로 된 수입이 없었어요. 빵집에서 일할 때는 매일 12시간씩 일하고 받는 한 달 월급이 회사 다닐 때 주급도 채 안 됐으니까요. 생활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수준이었죠. 가족들이 인정해 주고 지지해 줬기 때문에 이렇게 올 수 있었지만, 아이들이 더 어렸으면 다른 결정을 내렸을 것 같아요.”
가장 큰 노후 준비는 일할 거리를 만드는 것. 나에게 일의 기본은 노동.
- 보험은 미래의 위험을 대비해 설계되는 상품이라 노후 준비에서 ‘자산’의 가치를 특히 강조하는 것 같습니다. 금융권은 대체로 자산을 중시하는데 노후 준비에 ‘일’의 가치를 높게 보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돈, 많이 필요하죠. 수치로 계산하면요. 가령 부부가 한 끼를 먹으려면 인당 5천 원. 지금은 더 필요하겠죠. 1만 원씩, 하루 세 끼, 30일이라면 한 달 밥값만 90만 원. 여기에 다른 생활비와 자녀 결혼 비용, 대출금까지 고려하면 퇴직금으로 감당할 수준이 아니죠. 그럼 어떻게 준비할 거냐? 지금부터 준비하는 게 맞지만, 그 모든 비용을 완벽하게 준비하고 은퇴하거나, 은퇴 이후 그 자금만으로 살 수는 없다는 거예요.
그리고 돈이 충분하다고 매일 골프만 치러 다닐 수는 없겠죠. 사람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 하는 데 그 의미 있는 일이 무엇인가? 저는 그 일의 기본을 노동이라고 봤어요. 이 일은 지금도 힘들긴 하지만 건강이 허락하는 한은 평생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앞서 돈이 많이 필요하지 않다는 건 자식들이 다 컸고 부부 둘만 먹고 살면 되니까요. 더해서 삶의 기준을 바꿀 필요는 있죠. 수입이 좋았던 젊을 때처럼 좋은 차 타고, 좋은 집에 살고, 좋은 것만 먹고, 이런 기준을 평생 가져갈 순 없어요. 요즘 유행하는 미니멀 라이프까지는 아니더라도 조금 더 소박하게 욕심을 내지 말자. 병원비 같은 부분은 기본적으로 갖춰야 하지만 퇴직하면서 준비한 자금에 나의 노동으로 부가 수입을 만드는 거죠. 노동으로 얻어지는 건강함도 있고요.
언젠가는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을 나이가 되겠지만, 사람은 기본적으로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요.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은 아름답잖아요.”
- 많은 분이 퇴직하면 기존에 하던 일로 재취업을 하고 싶어 하시죠. 금융권에 계셨으니 어떻게 보면 투자가 가장 쉬운 방법은 아니었을까요? 시쳇말로 돈이 돈을 버는 세상이라고도 하고요.
“사람마다 생각도 다르고 가치도 다르지 않을까요. 저는 사실 금융권에 있었지만, 투자를 잘하는 사람은 아니었어요. 저도 제 아내도 그런 부분은 약해요. 투자도 지식과 용기가 있어야 하는 건데 내 돈이 아닌 걸로 그렇게 돈을 번다고 제가 더 행복해질 것 같지 않고, 크게 부럽다는 생각도 없었어요.
저는 매일 새벽에 일어나 빵을 준비해요. 정식 오픈은 9시지만 그 전에 출근길에 빵을 사 가시는 손님이 계셔서 매장은 그 전부터 열려있죠. 영업 마감인 저녁 8시까지 가게를 보는 일상이죠. 사실 고된 부분도 있지만 보람이 더 커요. 지금은 가족들이 도와주니 훨씬 여유도 있어요.
가게는 다시 영업을 준비하는 데 시간이 필요해 쉬는 날 앞뒤로 며칠을 더 비워야 하다보니 처음에는 여름 휴가철에도 이틀만 쉬고 문을 열었어요. 이제는 열흘 정도 문을 닫고 메뉴를 바꾸고 못 한 청소를 하죠. 그리고 겨울이면 12월 말 지나 며칠을 쉬어요. 개인 시간도 없고 고되지만, 앞으로도 60살이 되고 70살이 되어도 이 일을 하고 있겠죠.”
우리 밀로 찾은 방향성, 다음 목표는 생산 농부와 소비자를 잇는 지역 빵집.
힘든 일이지만 이 일에서 얻는 즐거움이 있어요. 며칠 전 슈톨렌을 사 가신 분이 ‘고맙습니다. 멋진 슈톨렌이었습니다.’라는 문구를 남겨주셨어요. 너무 감사했어요. 그런 것들에 힘을 내요. 내가 잘하고 있다. 제대로 가고 있다.
다만 목표에 도달하기까지는 좀 더 가야해요. 다음 목표는 하루 몇 개 만들어서 판매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클래스를 통해 빵 만드는 법을 공유하고, 작물을 생산하는 농부들과 소비자를 연결하는 플랫폼으로 역할을 하는 거예요. 농사짓는 분들이 여기서 소비자들을 직접 만나 무언가 같이 만들어가는 마당. 그래서 마르쉐(직거래 형태의 농부 시장)에 갈 때는 거기 오시는 농부들의 생산품을 이용해서 만들려고 노력해요. 그분들이 얼마나 열심히 농사를 짓고, 얼마나 많은 땀과 정성이 들어갔는지 알리고 더 의미 있고 건강한 빵을 만들려고 하죠.
이제 50대 중반이니 너무 조급하지 않게 가려고요. 꾸준히 가면 결국은 제가 그리던 부분들이 실현되지 않을까. 목표는 건 그런 거예요. 빵집의 규모가 아닌 일하는 영역을 확장해 가는 것.
- 그 시작으로 우리 밀 100% 빵을 만들어 알린다고 하셨고요. 우리 밀을 사용하는 특별한 이유나 장점이 있나요?
80년대 말 우리 밀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열악했죠. 아는 사람도 몇 없고 지금과 비교하면 품질도 많이 떨어졌고요. 당시 나온 우리 밀 빵을 먹어봤는데 맛있지 않았어요. 그런 기억이 있어 제빵을 시작했을 때부터 우리 밀을 그렸던 건 아니에요. 제빵 자격증을 따고 취업을 위해 여러 곳을 찾아 배우는 과정에서 우리 밀을 접하게 됐어요. 옛날에 먹었던 퍽퍽한 빵이 아니고 맛있었어요. 우리 밀을 다시 보게 되었죠.
이후 빵집을 처음 오픈하면서 우리 밀과 수입 밀을 모두 쓰다가 앉은키 밀만 써보기도 하고 백강 밀, 금강 밀로 빵을 만들어 봤는데 굳이 수입 밀을 안 써도 되겠다는 판단을 했어요. 2018년 가을부터는 우리 밀만 써요. 처음부터 정한 건 아니었고 하면서 방향이 잡혔어요. 시장성도 보이고요. 계속 적자가 나는데 사명감만 가지고 할 수는 없는 일이죠.
우리 밀은 종류가 굉장히 많고 극명한 차이가 있는 것도 아니죠. 하지만 제빵을 하면 나에게 좀 더 맞는 밀가루가 있어요. 앉은키 밀의 경우는 향과 색에서 차이가 많은 편이지만요. 저는 가능하면 생산자를 알 수 있는 밀을 쓰고 싶고 노력도 해요. 그게 아까 말씀드린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플랫폼의 역할이란 의미에도 맞죠. 그렇지만 100% 직거래를 하기는 어려워요. 상업적으로 제빵을 하려면 공급의 안정성도 필요한데 어떤 생산자들은 처음에 몇 달 쓰고 나면 다음에 밀이 없어요. 우리 밀의 문제는 다른 농부를 통해 밀을 받으면 또다시 테스트를 다 해봐야 돼요. 밀가루가 똑같지가 않아요. 그게 반복이 잦으면 빵집을 하기는 어렵죠.
우리 밀 사용이 더 확대되어야 하지만 100% 우리 밀만 쓸 수는 없다는 것도 알아요. 그런데,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밀 값이 폭등하는 것을 보면서 식량 주권의 문제도 생각하게 됐어요. 지금은 우리 밀 사용이 10%가 안 되지만 그 점유율을 꾸준히 높여 나가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거기에서 나는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결국은 우리 밀을 사용해서 좋은 빵을 많이 만들고 소비자들에게 우리 밀에 대한 좋은 인식을 심어주는 것,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역할 같아요.
제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건 지역 빵집이에요.
‘우리 동네에는 아쥬드블레라는 빵집이 있어. 나중에 오면 먹어봐.’ 소개할 수 있는 빵집이 되면 꽤 행복할 것 같아요. 제가 추구하는 건 식사 빵이에요. 보시면 간식 빵이 거의 없죠. 12월에만 만드는 슈톨렌 정도가 디저트 빵이고 타르트 두어 종류와 브라우니가 전부예요. 디저트 빵은 크게 자신도 없고 잘하는 분들이 넘쳐나죠. 그분들은 그분들의 영역이 있고 저는 발효 빵을 중심으로 한 제 영역에서 열심히 하는 거죠. 모든 사람이 한쪽으로 몰려가는 건 재미없잖아요.
Q. 창업을 준비하는 4050 중·장년층 분들에게 어떤 이야기가 도움이 될까요?
두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 머릿속에서만 그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실제로 그 안에 들어가 보지 않고 손님의 입장으로 경험한 걸 전부라고 생각하면 100% 망해요. 일이 실제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알아야 해요. 현재의 유행을 따르거나 다른 사람의 말만 듣고 창업 하지 말고 직접 그 안에 들어가 충분한 경험을 하고 결정하세요. 현장에서의 준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시간이 필요하죠. 50대에 퇴직하고 창업해도 최소한 15년~20년은 할 일이에요. 그러니 조급해하지 말고 처음 2~3년을 투자하세요. 그 정도는 투자해야 15년, 20년을 끌어갈 수 있어요. 최소한 쉽게 실패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어떤 창업이든 똑같아요.
저는 좀 급하게 나왔지만 ‘퇴직’도 준비가 필요하고, ‘퇴직 후’에 새로운 일를 할 때도 준비가 필요한 것 같아요. 더군다나 퇴직 후라면 적어도 20년 이상 근무한 사람들이 나와서 새로운 일을 하는 경우니 나이가 있겠죠. 20대는 실패하면 다시 갈 수 있는 길이 많은데 50대는 달라요. 저도 걱정했던 부분이에요. 한 번 꺾이면 다시 돌아갈 길이 없다는 사실. 그러니 준비와 경험이 꼭 필요하다.
너무 두렵게만 여기지는 마시고요. 준비를 많이 하면 실패 요인도 그만큼 걸러져요. 그러면 창업이 더 나은 선택일 수 있어요. 평생 월급쟁이로는 못 살잖아요. 결국은 창업할 수밖에 없겠죠. 언젠가 해야 한다면 미리 준비하는 게 좋죠. 회사에 있을 때부터 내가 관심 가는 분야를 찾고 준비하면 제일 좋을 것 같아요.
창업가에게 필요한 자질은 무엇일까요? 기발한 아이디어와 강력한 추진력, 일반인과는 다른 특화된 유전자? 이인교 님을 인터뷰하고 나니, 창업가는 특별하거나 선택받은 이들이 아니라 성실함과 신중함을 갖추고 시간을 기다릴 수 있는 인내심을 가진 사람이면 누구도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기에 다양성을 존중하고 일의 의미를 찾아서 크게 키워낼 줄 아는 창업가라면 더할 나위 없겠죠.
이인교 님과의 대화는 삶의 방향을 잡아줄 아포리즘이, 빵에 숨겨진 견과류처럼 맛을 돋워주는 영양가 풍부한 대화였습니다. 간식 빵처럼 화려하고 달지 않아도 물리지 않는 맛으로 우리의 건강을 책임지는 아쥬드블레의 빵이 만든 이와 많이 닮은 건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인터뷰 및 정리 : 화담,하다 권주영
창업가:
기존 산업 내에서 새로운 방식을 통해 문제를 발견하고 남다른 해결책으로 사업을 시작하려는 사람
“휴일 아침 슬리퍼에 간편복 차림으로, 아들 손 잡고 와서 빵 하나 사 갈 수 있는 동네 빵집이 되는 게 제 꿈이에요. 전국에 알려진 유명한 빵집이 있는가 하면, 지역 곳곳에 문을 열고 서로 다른 맛을 보여주는 동네 빵집도 있죠. 그 집을 찾아야만 먹을 수 있는 빵을 만드는 동네 빵집이 많이 생기면 좋겠어요.”
유기농 토종 밀과 우리 밀을 이용해 만드는 유럽식 건강빵. 담백한 식사 빵 맛처럼 꾸밈없는 미소를 짓는 6년 차 프로 제빵사 이인교 님을 양천구의 동네 빵집 아쥬드블레(âge du blé, 밀의 시대)에서 만났습니다. 회사원으로 근무한 21년의 세월과 3년의 준비기간, 제빵사로의 6년까지 묵묵히 걸어온 그 길을 인터뷰로 따라가 보았습니다.
“보험회사에서 일했는데 회사에서 명예퇴직 프로그램을 진행했어요. 그냥 손들고 나오는 게 아니라 보통은 대상자들의 범위가 나와요. 그때 제 입사년도가 포함됐다고 들었어요. 가능하면 그 입사년도까지는 나가라는 뜻이죠. 처음엔 나와는 관계없다 여겼지만 회사가 우리를 필요로 하지 않는데, 내가 왜 여기 있어야지? 여기서 열심히 일했던 그 힘이면 나가서 무엇이든 할 수 있지 않을까? 다른 일을 해보자. 시작은 그런 마음이었어요.
제가 취미로 홈베이킹을 했어요. 집에 있는 작은 오븐으로 아이들에게 쿠키며 모닝빵 같은 간식을 만들어 주곤 했는데, 조물딱 조물딱 만드는 게 재밌더라고요. 아이들이 맛있다고 해주는 것도 좋았고요. 자주는 못 해도 휴일이면 무언가 만들곤 했어요.
회사에 다니면서 누구나 한번은 노후 준비를 고민해 보잖아요. 월급생활자 중에 노후에 놀고먹을 수 있을 만큼의 돈을 준비하고 나오는 사람은 거의 없죠. 일은 해야 할 테고. 어떤 일을 할까? 정년퇴직하고 빵으로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노후를 보내고 싶다. 그런 막연한 생각을 하고 있다가 더 나이 들기 전에 미리 시작해도 좋겠다는 마음으로 회사를 나왔어요.
지금 보니 정말 잘한 것 같아요. 제빵이 생각보다 훨씬 힘든 일이에요. 학원에 다니는 동안은 사람들이 착각하죠. 잠깐 배우는 건 어렵지 않거든요. 본업으로 일을 해보면 이게 진짜구나 느끼실 거예요. 빵집에서 일하면 젊은 사람들도 힘들어서 많이 들어왔다 나가요. 그래서 시간이 더 지나고 시작했다면, 가령 정년퇴직 후에 시작했다면 이 일을 못 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하지만 너무 일렀어도 시작하기 어려웠을 거예요. 시간과 돈을 투자해야 하는 일이라서요. 제가 그만둘 때 큰아이가 대학교에 막 입학했고 둘째는 고등학생이 되는 시기였는데 2015년 회사를 나와 2018년 여기에 가게를 오픈하기까지 3년간 제대로 된 수입이 없었어요. 빵집에서 일할 때는 매일 12시간씩 일하고 받는 한 달 월급이 회사 다닐 때 주급도 채 안 됐으니까요. 생활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수준이었죠. 가족들이 인정해 주고 지지해 줬기 때문에 이렇게 올 수 있었지만, 아이들이 더 어렸으면 다른 결정을 내렸을 것 같아요.”
가장 큰 노후 준비는 일할 거리를 만드는 것. 나에게 일의 기본은 노동.
- 보험은 미래의 위험을 대비해 설계되는 상품이라 노후 준비에서 ‘자산’의 가치를 특히 강조하는 것 같습니다. 금융권은 대체로 자산을 중시하는데 노후 준비에 ‘일’의 가치를 높게 보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돈, 많이 필요하죠. 수치로 계산하면요. 가령 부부가 한 끼를 먹으려면 인당 5천 원. 지금은 더 필요하겠죠. 1만 원씩, 하루 세 끼, 30일이라면 한 달 밥값만 90만 원. 여기에 다른 생활비와 자녀 결혼 비용, 대출금까지 고려하면 퇴직금으로 감당할 수준이 아니죠. 그럼 어떻게 준비할 거냐? 지금부터 준비하는 게 맞지만, 그 모든 비용을 완벽하게 준비하고 은퇴하거나, 은퇴 이후 그 자금만으로 살 수는 없다는 거예요.
그리고 돈이 충분하다고 매일 골프만 치러 다닐 수는 없겠죠. 사람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 하는 데 그 의미 있는 일이 무엇인가? 저는 그 일의 기본을 노동이라고 봤어요. 이 일은 지금도 힘들긴 하지만 건강이 허락하는 한은 평생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앞서 돈이 많이 필요하지 않다는 건 자식들이 다 컸고 부부 둘만 먹고 살면 되니까요. 더해서 삶의 기준을 바꿀 필요는 있죠. 수입이 좋았던 젊을 때처럼 좋은 차 타고, 좋은 집에 살고, 좋은 것만 먹고, 이런 기준을 평생 가져갈 순 없어요. 요즘 유행하는 미니멀 라이프까지는 아니더라도 조금 더 소박하게 욕심을 내지 말자. 병원비 같은 부분은 기본적으로 갖춰야 하지만 퇴직하면서 준비한 자금에 나의 노동으로 부가 수입을 만드는 거죠. 노동으로 얻어지는 건강함도 있고요.
언젠가는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을 나이가 되겠지만, 사람은 기본적으로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요.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은 아름답잖아요.”
- 많은 분이 퇴직하면 기존에 하던 일로 재취업을 하고 싶어 하시죠. 금융권에 계셨으니 어떻게 보면 투자가 가장 쉬운 방법은 아니었을까요? 시쳇말로 돈이 돈을 버는 세상이라고도 하고요.
“사람마다 생각도 다르고 가치도 다르지 않을까요. 저는 사실 금융권에 있었지만, 투자를 잘하는 사람은 아니었어요. 저도 제 아내도 그런 부분은 약해요. 투자도 지식과 용기가 있어야 하는 건데 내 돈이 아닌 걸로 그렇게 돈을 번다고 제가 더 행복해질 것 같지 않고, 크게 부럽다는 생각도 없었어요.
저는 매일 새벽에 일어나 빵을 준비해요. 정식 오픈은 9시지만 그 전에 출근길에 빵을 사 가시는 손님이 계셔서 매장은 그 전부터 열려있죠. 영업 마감인 저녁 8시까지 가게를 보는 일상이죠. 사실 고된 부분도 있지만 보람이 더 커요. 지금은 가족들이 도와주니 훨씬 여유도 있어요.
가게는 다시 영업을 준비하는 데 시간이 필요해 쉬는 날 앞뒤로 며칠을 더 비워야 하다보니 처음에는 여름 휴가철에도 이틀만 쉬고 문을 열었어요. 이제는 열흘 정도 문을 닫고 메뉴를 바꾸고 못 한 청소를 하죠. 그리고 겨울이면 12월 말 지나 며칠을 쉬어요. 개인 시간도 없고 고되지만, 앞으로도 60살이 되고 70살이 되어도 이 일을 하고 있겠죠.”
우리 밀로 찾은 방향성, 다음 목표는 생산 농부와 소비자를 잇는 지역 빵집.
힘든 일이지만 이 일에서 얻는 즐거움이 있어요. 며칠 전 슈톨렌을 사 가신 분이 ‘고맙습니다. 멋진 슈톨렌이었습니다.’라는 문구를 남겨주셨어요. 너무 감사했어요. 그런 것들에 힘을 내요. 내가 잘하고 있다. 제대로 가고 있다.
다만 목표에 도달하기까지는 좀 더 가야해요. 다음 목표는 하루 몇 개 만들어서 판매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클래스를 통해 빵 만드는 법을 공유하고, 작물을 생산하는 농부들과 소비자를 연결하는 플랫폼으로 역할을 하는 거예요. 농사짓는 분들이 여기서 소비자들을 직접 만나 무언가 같이 만들어가는 마당. 그래서 마르쉐(직거래 형태의 농부 시장)에 갈 때는 거기 오시는 농부들의 생산품을 이용해서 만들려고 노력해요. 그분들이 얼마나 열심히 농사를 짓고, 얼마나 많은 땀과 정성이 들어갔는지 알리고 더 의미 있고 건강한 빵을 만들려고 하죠.
이제 50대 중반이니 너무 조급하지 않게 가려고요. 꾸준히 가면 결국은 제가 그리던 부분들이 실현되지 않을까. 목표는 건 그런 거예요. 빵집의 규모가 아닌 일하는 영역을 확장해 가는 것.
- 그 시작으로 우리 밀 100% 빵을 만들어 알린다고 하셨고요. 우리 밀을 사용하는 특별한 이유나 장점이 있나요?
80년대 말 우리 밀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열악했죠. 아는 사람도 몇 없고 지금과 비교하면 품질도 많이 떨어졌고요. 당시 나온 우리 밀 빵을 먹어봤는데 맛있지 않았어요. 그런 기억이 있어 제빵을 시작했을 때부터 우리 밀을 그렸던 건 아니에요. 제빵 자격증을 따고 취업을 위해 여러 곳을 찾아 배우는 과정에서 우리 밀을 접하게 됐어요. 옛날에 먹었던 퍽퍽한 빵이 아니고 맛있었어요. 우리 밀을 다시 보게 되었죠.
이후 빵집을 처음 오픈하면서 우리 밀과 수입 밀을 모두 쓰다가 앉은키 밀만 써보기도 하고 백강 밀, 금강 밀로 빵을 만들어 봤는데 굳이 수입 밀을 안 써도 되겠다는 판단을 했어요. 2018년 가을부터는 우리 밀만 써요. 처음부터 정한 건 아니었고 하면서 방향이 잡혔어요. 시장성도 보이고요. 계속 적자가 나는데 사명감만 가지고 할 수는 없는 일이죠.
우리 밀은 종류가 굉장히 많고 극명한 차이가 있는 것도 아니죠. 하지만 제빵을 하면 나에게 좀 더 맞는 밀가루가 있어요. 앉은키 밀의 경우는 향과 색에서 차이가 많은 편이지만요. 저는 가능하면 생산자를 알 수 있는 밀을 쓰고 싶고 노력도 해요. 그게 아까 말씀드린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플랫폼의 역할이란 의미에도 맞죠. 그렇지만 100% 직거래를 하기는 어려워요. 상업적으로 제빵을 하려면 공급의 안정성도 필요한데 어떤 생산자들은 처음에 몇 달 쓰고 나면 다음에 밀이 없어요. 우리 밀의 문제는 다른 농부를 통해 밀을 받으면 또다시 테스트를 다 해봐야 돼요. 밀가루가 똑같지가 않아요. 그게 반복이 잦으면 빵집을 하기는 어렵죠.
우리 밀 사용이 더 확대되어야 하지만 100% 우리 밀만 쓸 수는 없다는 것도 알아요. 그런데,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밀 값이 폭등하는 것을 보면서 식량 주권의 문제도 생각하게 됐어요. 지금은 우리 밀 사용이 10%가 안 되지만 그 점유율을 꾸준히 높여 나가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거기에서 나는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결국은 우리 밀을 사용해서 좋은 빵을 많이 만들고 소비자들에게 우리 밀에 대한 좋은 인식을 심어주는 것,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역할 같아요.
제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건 지역 빵집이에요.
‘우리 동네에는 아쥬드블레라는 빵집이 있어. 나중에 오면 먹어봐.’ 소개할 수 있는 빵집이 되면 꽤 행복할 것 같아요. 제가 추구하는 건 식사 빵이에요. 보시면 간식 빵이 거의 없죠. 12월에만 만드는 슈톨렌 정도가 디저트 빵이고 타르트 두어 종류와 브라우니가 전부예요. 디저트 빵은 크게 자신도 없고 잘하는 분들이 넘쳐나죠. 그분들은 그분들의 영역이 있고 저는 발효 빵을 중심으로 한 제 영역에서 열심히 하는 거죠. 모든 사람이 한쪽으로 몰려가는 건 재미없잖아요.
창업가에게 필요한 자질은 무엇일까요? 기발한 아이디어와 강력한 추진력, 일반인과는 다른 특화된 유전자? 이인교 님을 인터뷰하고 나니, 창업가는 특별하거나 선택받은 이들이 아니라 성실함과 신중함을 갖추고 시간을 기다릴 수 있는 인내심을 가진 사람이면 누구도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기에 다양성을 존중하고 일의 의미를 찾아서 크게 키워낼 줄 아는 창업가라면 더할 나위 없겠죠.
이인교 님과의 대화는 삶의 방향을 잡아줄 아포리즘이, 빵에 숨겨진 견과류처럼 맛을 돋워주는 영양가 풍부한 대화였습니다. 간식 빵처럼 화려하고 달지 않아도 물리지 않는 맛으로 우리의 건강을 책임지는 아쥬드블레의 빵이 만든 이와 많이 닮은 건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인터뷰 및 정리 : 화담,하다 권주영